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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열(劉鐘烈)정치학 박사 “고향 이천에서 운둔하는 정치학 박사를 찾아 혼돈한 대한민국 정국의 해법을 묻다”대한민국의 세계5대강국화 운동 총재
대한뉴스 webmaster@n123.ndsoftnews.com | 승인2017.02.06 11:17

[대한뉴스]대한민국은 현재 매우 긴박한 위기상황에 처해있다. 그 이유는 야당이 주도권을 갖고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여 이를 인준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의뢰하고 있으며 이를 인준하라고 각종 시위를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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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을 막후에서 도운 사실을 손석희 씨가 2016년 가을에 JTBC에서 폭로하였다. 이 사실을 접한 야당들은 이 사실을 국가적 이슈로 부각시키며 박 대통령 탄핵을 주창하는 각종 촛불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자 현직대통령이 이러한 불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전국적 이슈가 되어 온 나라가 혼돈에 빠졌다. 박대통령에 대한 비리가 언론을 타고 전국에 확산되자,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수십 명이 의리를 저버리고 탈당하여 새누리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야당들은 이를 이용하여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시켜 헌법재판소에 이를 제청하였다.

 

그렇게 되자 그동안 잠잠하던 보수 세력들이 들고 일어나 촛불시위가 아니라 태극기 시위를 벌려가며 촛불시위에 맞서고 있다. 그러면서 야당들의 탄핵시위는 북한정권의 사주를 받은 반국가적 행위라며 폭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와중에도 친북좌파들은 끊임없이 반국가적 행위와 구호들은 계속 외쳐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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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민심은 흉흉하여지고, 경제활동도 위축되어가고 있으며, 친북좌파들의 반 대한민국적 행위와 구호들은 전국에 더 퍼져나가고 있다. 많은 국민들과 지식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나라가 곧 공산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 속에 떨기 시작하였다.

 

과연 이 문제는 어떻게 종말이 지어질 것인가? 또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러한 암흑을 밝혀보기 위하여 전 세계적인 정책전문가이시고 정치학자이시며 여러 나라의 국가정책과 안보전략을 자문해 오신 유종열 정치학 박사를 만나 그 고견을 듣기로 하였다.

 

유종열(劉鐘烈) 박사는 임금님 진상 쌀의 산지로 유명하고, 정치거물들을 배출하기도 한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가족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여 서울생활을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배재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 미국 뉴욕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전 세계에서 12명의 장학생을 선발하는데 뽑혀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두 받아가며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유학 4년 반 만에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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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학교에서 가장 빠른 기간 내에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점과 박사학위논문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뉴욕대학교의 창립자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 덕으로 뉴욕대학교 부총장의 행정담당 보좌관으로 발탁되어 뉴욕대학교의 발전계획을 총괄 담당하는 대학제도연구실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뉴욕대학교를 10대 명문대학으로 발전시키는 계획을 작성하여 건의하였고, 오늘날 뉴욕대학교가 전 세계 20위안에 드는 저명대학교가 되는데 일조를 하였다.

그 후 미국 하원의장의 보좌관으로 초빙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를 마다하고 뉴욕주립대학교의 교수로 자리를 옮겨 강의를 하면서 예일대학교의 Harold Lasswell 교수 등과 협력하여 국가정책을 집중 연구-분석하는 정책학(Policy Science)이란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발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이와 동시에 “성장의 한계”란 보고서를 내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로마클럽(Club of Rome)의 연구부책임자로도 활동하였다.

 

그런 와중에 1975년 보스턴에서 개최된 세계대학교총장회의(IAUP)에 기획자문위원으로 봉사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만난 경희대학교 조영식 총장님의 초청으로 1976년에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로 초빙을 받았고 또한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경희대학교의 기획실장 겸 행정심의위원 등의 행정보직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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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 첫 해인 1976년에는 미국의 대선에서 포드 현직 대통령과 카터 현직 주지사가 경쟁을 벌리고 있었는데, 한국의 중앙정보부와 외무부가 서로 협의하여 포드 현직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번 선거에서는 카터가 당선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포드를 일방적으로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정부정책을 비판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KCIA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받았으나 카터가 당선되자 오히려 정책분석분야의 영웅으로 부상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그리하여 카터가 주장하던 주한 미지상군 완전철수를 막아내는 전략을 수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 주한민지상군 철수를 4,000명 선으로 막아내는 업적을 이루었다.

 

경희대학교 재직 중이던 1978년에는 세계대학총장회의 3년차 대회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개최하였고 이 대회를 위해 이란의 팔레비 왕으로부터 당시 돈으로 15만 불을 지원받기도 하였다. 그 후 경희대학교의 학문적 질을 높이기 위해 1979년 10월에 세계적 명성이 높은 로마클럽과 합동회의를 개최하였고 그 학술회의에는 노벨수상자들을 5명이나 초청하였고 뉴욕타임즈와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신문 본사에서도 기자가 취재를 나올 정도로 세계적 각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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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정희 대통령께서 1979년 10월 26일 시해를 당하신 후 전국적으로 각종 데모가 일어나 대학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를 견디기가 어려워 유 박사는 미국으로 되돌아가 스탠포드대학교 후버연구소의 초빙연구원으로 재직하였다. 이때 Ronald Reagan 대통령 후보의 대소련 군사전략을 자문하게 되었고 그때 건의한 “소련의 경제적 목 졸라 죽이기 전략” (Economic Strangulation of the Soviet Union)이 효력을 발휘하여 소련은 1989년 경제적 이유로 몰락하게 되었다.

 

후버연구소에서의 연구를 마치고 1982년에 다시 귀국한 후 경희대학교의 국제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세계최초의 평화백과사전(Encyclopedia of World Peace)을 편집하여 영국의 퍼가몬 출판사에서 출판하여 전 세계적 평화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와 동시에 정책학 전문가로서 세계정치학회 파리학회에 참석하여 개도국 정책연구 특별분과위원회 공동위원장직을 맡게 되어 국제적 정책연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그 와중에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여 각종 정책을 자문하게 되었다. 이때 제안한 주요정책안들이 모두 채택되어 큰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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