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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석굴암 주지 도일스님, 수행하며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서울 근교, 오봉산 석굴암이 있어요.
김새봄 기자 dhns@naver.com | 승인2017.04.28 10:33

[대한뉴스=김새봄 기자]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굴암길에 위치한 오봉산 석굴암(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굴암길 519 (교현리) 전화 : 031-826- 3573)은 대한 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석굴암은 오봉산 관음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 근교의 숨겨진 보석과 같은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대한뉴스

오봉산은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국립공원으로 손꼽히는 북한산과 도봉산에 이웃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도봉산의 서쪽 능선에 다섯 봉우리가 있어서 오봉산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경기민요 오봉산타령이 바로 이곳에서 나왔다. 오봉산은 웅장하면서도 운치 있는 경관을 갖추어 누구든지 오면 감탄사가 절로난다.

 

석굴암은 위로는 도봉이 치닫고 아래로는 삼각산이 모여 마치 별들이 모여서 북극성(北極星)을 떠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세뿐 아니라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 또한 맑고 깊어 예로부터 명승지(名勝地)로 유명하다. 천혜의 자연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는 오봉산 석굴암은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오는 천년고찰이다. 고려말기 공민왕 당시에 왕사였던(王師)나옹화상이 3년간 머물며 수행 정진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 제자인 설암 관익 스님께서 주석하며 수행 정진과 중창불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석굴암은 오래된 기도처이다. 특히 나한 기도처로 유명했는데, 나한(羅漢) 신앙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크게 성행했으며, 지금도 석굴암은 한강 이북에서 가장 유명한 나한 기도도량이다.

 

석굴암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이어져 단종의 왕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의 원찰(願刹)로 중수되었다. 숭유억불과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등의 격동기를 지나면서도 면면히 사격(寺格)을 유지해 왔지만,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가 되어 폐허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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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석굴암을 동암선사께서 안타깝게 여겼다. 동암선사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중 한 분으로 참여하신 백용성 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셔서 독립은동을 하신 분이시다 스님은 제자 초안 스님에게 석굴암 중창불사를 당부했고, 초안 스님은 은사의 뜻을 받들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초안 큰스님을 이어 도일 스님께서 중창불사의 원력을 실현하는데 힘쓰시며 동암, 초안 큰스님들의 뜻을 계승하고 계신다.

 

도일 스님은 중창불사를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 3차례에 걸쳐 1000일 기도를 올렸다. 일체 바깥출입을 금하고 3000일을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부처님 제자로 큰스님들의 유지를 계승하는 것이 도리라고 확신한 도일 스님은 한시도 쉬지 않고 불사에 매진해오셨다. 한국전쟁 당시 폐허 였던 시절을 떠올리면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작불사를 진행되어 차근차근 사격의 면모가 갖추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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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그동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68년 북한의 지령을 받은 무장간첩 김신조 일당이 석굴암 인근의 우이령길을 통해 서울에 잠입했기 때문에 40여 년간 출입이 통제되었다. 군부대의 허가를 받지 않고는 드나드는 일이 불가능했다. 다행히도 수년 전에 우이령길이 탐방로로 개방되면서 불자들도 예전보다는 수월하게 석굴암을 참배하게 되었다. 40여 년간 출입이 어렵다 보니 자연환경은 비교적 잘 보존되었다. 그 때문인지 우이령을 통해 북한산과 도봉산을 찾는 등산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천년사찰의 사격(寺格)에 걸맞는 도량으로 장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도일 스님은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로 불자들이 편안하게 수행하고 정진할 수 있는 기도도량을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불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언제든지 찾아와 세속에서 찌든 마음의 번뇌를 씻고 힐링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석굴암은 매년 음악회를 개최하며 불교의 가르침이 현실세계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석굴암에서 개최하는 단풍음악제는 지난해 8회를 맞이했는데 다채로운 공연으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단순히 공연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자비의 쌀을 나누고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자비(慈悲)를 실천하고 있다.

 

도일 스님은 “중창불사는 물론 음악회와 이웃을 위한 자비행이 주지 혼자의 힘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조길수 신도회장님을 비롯한 관음회, 청년회 등 석굴암 모든 신도들이 합심하여 함께 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공을 신도들에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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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문화국장을 역임한 도일 스님은 중창불사와 기도 정진, 이웃을 위한 자비행을 하는 틈틈이 붓을 들어 선서화(仙書畵)를 그리고 있다. 세속을 여윈 출가 수행자로서 정진한 결과를 화폭에 담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선서화를 쓰는 것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지만, 주변의 강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스님은 산문(山門)을 나서 몇 차례 전시회를 개최했다.

 

1993년 해인사 구광루에서 합천 군부대 내 호국법계사 법당 건립기금전을 열었으며, 그 이듬해는 경인미술관에서 산사와 스님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고, 2006년에는 조선일보사에서 선묵전과 우림화랑에서 각각 초대전을 가졌다. 많은 관람객들의 호응과 박수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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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색 있는 서화(書畵) 전시해

 

평론가들은 도일 스님 선서화가 지닌 특징을 꼽을 때 ‘용(龍)’자를 비유하여 평하는 이들이 많다. 글씨가 물이 흐르는듯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이 넘친다는 것이다. 특히 ‘용’ 글씨는 마치 살아있는 용처럼 힘차게 움직이는데, 특히 꼬리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스님의 작품 전시회에는 원로 작가들도 찾아와 격려와 평가를 해 주었다. “어찌하여 다른 사람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작품을 만드셨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혹자는 “도대체 어떤 스님이기에 전시를 하느냐” “정말로 스님이 쓴 것이냐”고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독창적이다’, ‘깔끔하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독특한 필체와 화풍이 이목을 끌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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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 스님 글씨는 봉선사 범종각, 수종사 범종각, 용문사 선열당, 회암사 대웅전, 1군단 군법당 대웅전, 30사단 안중근 장군관, 호국쌍용사의 편액을 통해서도 복 수 있다. 불교계는 물론 군부대에서도 이미 정평이 나있다. 뿐만 아니라 사패산 터널 입구에 자리한 ‘보합기념탑(保合記念塔)’도 도일 스님 글씨이다. 동국대 역경원장을 역임한 봉선사 조실 월운 큰스님께서 지었으며, 도일 스님이 직접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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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선서화를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글을 썼는지 신기할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작품과 제가 하나가 되어 혼연일체의 마음으로 집중을 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지 않을까 싶다”고 스님은 말한다. 또한 스님은 “글씨를 쓸 때에는 고요한 마음에 이르는 참선 수행이 되어야 온전한 작품이 나온다”라고 말한다.

 

오봉산 석굴암을 위해 바쳐온 삶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둘러싸인 오봉산 석굴암은 앞서 밝혔듯이 한국전쟁 직후까지만 해도 폐허였다. 마을 사람들이 ‘마찻길’로 사용하고, 가마터도 있었다고 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에 있던 가마터와 마찻길은 왕실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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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부에서 한양(서울)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마찻길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왕실 사람이나 고위 관료에게만 허용된 길이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1968년 무장간첩 일당이 침투한 뒤에는 군사통제지역으로 묶였다. 그렇다 보니 수려한 자연 경관과 유구한 역사가 일반인에게 묻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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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국회의원과 양주시장이 석굴암 쪽에 우이령길을 콘크리트 도로를 뚫어 장흥면 일대를 발전시킨다는 공약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약이 석굴암의 역사적 가치와 자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공론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자연 훼손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일시적으로는 탐방객이 증가할 수 있지만 후손들에게 온전하게 물려줘야 할 자연은 훼손될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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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순간적인 잘못된 판단으로 환경을 훼손하면 당대는 물론 후손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환경단체, 이익단체와의 갈등도 있었지만, 환경 보전에 성공했다.

 

현재 석굴암은 거의 유일하게 서울 근교에서 자연환경이 완벽하게 보존된 곳으로, 아직도 통제구역으로 일부 지정되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도일 스님은 “최대한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시대적 상황과 주민들의 합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민주 사회의 중요한 원칙”이라면서 원칙과 상식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인연 따라 불교 길에 자연스럽게 발 들여

 

도일 스님은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서 태어나 동자승으로 출가해 누구의 손에 끌려서 스님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고 오직 수행에 만족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전통 사찰의 주지 소임을 맡으려면 40대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도일 스님은 32살의 젊은 나이에 주지를 맡아 20여년 넘게 석굴암 중창불사와 아울러 수행정진하며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넘게 바뀌었으니, 짧지 않은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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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수행자의 삶이 금생에서 자신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며 석굴암의 수려한 경관을 유지하고, 나아가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사찰 활동외에는 차를 마시거나 밭일을 하는 등 지극히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오봉도일 스님은 앞으로도 확고한 원력 아래 불자는 물론 주민들과 함께 석굴암이 기도도량이자 명승지로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갖춰 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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